“김주애는 후계자 ‘자리 잡기’ 대역이다?”
북한 김정은 위원장의 딸 김주애가 후계 권력 구도로 자리를 잡아가는 모양새다. ‘샛별 여장군’이라는 호칭으로 불리면서 그 인식이 더욱 굳어져 가는 중이다.
아직 김주애 현상을 후계자 구도로 단정하기엔 많은 부분이 의문스럽다. 형식만 잡혀갈 뿐 내용은 전혀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 몇 장의 사진과 호칭으로 단정하기에 지금 북한을 둘러싼 내외부 환경이 너무 복잡하지 않은가. 북한은 우리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봉건적 문화가 지배하는 남존여비 사회이다. 결론적으로 김주애는 백두혈통의 4세 권력 구도를 잡기 위한 ‘자리 잡기’ 대역이라는 게 나의 생각이다.
그러나 후계자라는 언론들의 생각이 맞다면 김정은의 생각을 잠시 짚고 넘어가는 게 필요하다. 우선 김정은은 여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의 활약상(?)을 보면서 여성 정치인에 대한 한 가닥 희망을 가졌을 법하다. 김여정의 정치적 실적이 어떻든 오빠의 힘을 업었든 여성으로서 정치권력을 휘어잡는 수완을 보면서 김정은도 딸에 대해 그런 생각을 가졌을 수 있다.
지금으로서는 어떤 경우이든 김주애로 대표되는 포스트-김정은 권력 구도를 예측해 봐야 할 때다. 최근 김주애가 입고 나온 시스루 옷 한 벌에도 호들갑 떠는 우리 언론에 나타나는 그에 대한 인식 혼란 자체가 소모적이다 못해 안쓰럽기도 하다. 그래서 반론을 제기하면서 이에 대한 평소 생각을 정리해 보려 한다.
‘후계 자리 잡기’ 대역일 개연성
김주애가 후계자 대역이라는 관점에서 보자. 단지 북한의 남성 우월주위 문화 때문만은 아니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김주애는 2013년 2월생으로 올해 11살에 불과하다. 후계자 수업을 받을 수는 있는 나이지만, 아무리 독재국가라 하더라도 드러내 놓고 후계자 행세를 하는 것은 준비작업과는 전혀 다른 문제다. 초등학생에게 이런 역할을 맡긴다는 것은 견디기 어려운 짐을 지우는 일이며, 성격 형성에도 좋지 않다는 것을 어려서 그 자리에 등극한 김정은 자신이 모를 리가 없다.
다만 이런 정도의 생각은 해 봤다. 김주애가 알려진 대로 거침없는 성격에 집념이 강한 편이라 부모인 김정은이 보기엔 권력자 자질을 키워 갈 수도 있다는 기대를 가지는 걸까? 그러나 후계를 전제로 딸을 내세우는 것이 북한의 현 수뇌부 시스템에 주는 갈등의 불씨가 되거나 북한의 불안정한 미래를 놓고 볼 때 딸에게도 큰 위협이 되리란 걸 생각하지 않았을 리는 없다.
처음엔 김주애를 데리고 나온 김정은을 보며 이미지 정치용 마스코트 효과 또는 딸바보란 생각이 우세했다. 하지만 주변의 복잡한 권력 환경을 대입해 보면서 자리 잡기용 대역이란 생각에 모아졌다. 우선 김정은의 건강 상태가 매우 좋지 않다는 점 때문에 여동생 김여정과 형 김정철 등 권좌에 근접한 경쟁자들을 견제하기 위한 선제 포석으로 보는 것은 무리가 없어 보인다. 특히 김정은의 여성 편력으로 인해 김주애 외에도 두 아들이 더 있다는 설이 유력해 리설주를 둘러싼 암투가 있다는 점도 이와 비슷한 환경을 예측하게 만든다.
어쨌든 북한의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11살 후계자 지명은 비현실적임에 틀림이 없다. 지금 북한은 체제 기반이 견고한 상태도 아니며 여성 지도자가 헤쳐 나가기에 녹록한 상태는 더욱 아니다. 이는 김정은 자신이 권력을 잡아가는 과정에서 겪어 오면서 누구보다 잘 아는 사실이다.
따라서 현재 ‘샛별 여장군’이란 호칭으로 마련된 김주애의 자리는 김주애 또는 그의 오빠의 미래 권력 공간을 예약한 자리가 아닐까 나는 짐작한다. 장차 벌어질 권력 변화의 혼란을 막기 위해 김주애의 공간을 통해 권부와 주민들에게 익숙한 패러다임을 만들기 위한 과정이라는 게 나의 관점이다. 새집을 짓기 위해 미리 터를 닦는 데 비할 일 아닌가.
만약 유사시에 진짜 김주애가 등극한다면?
이 상황에서는 김정은의 갑작스러운 유고로 김주애가 실제로 최고 자리에 오를 개연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그럴 확률은 지금으로서는 낮거나 없다 하더라도 상황에 따라 높아질 수 있다고 가정해 보자. 최근 국정원에서도 섣불리 판단할 수는 없다는 전제를 두면서도 김주애가 북한 후계자로 유력하다는 판단 역시 현실적 기준보다는 개연성에 대한 판단 영역을 포함하는 것으로 봐야 한다.
김정은의 건강 상태는 심각한 것이 분명하다. 김정은은 여러 가지 건강 이상 징후를 보여 왔고, 최근 중국 선양의 한 병원에서 비밀리에 심장 시술을 받았다는 것이 확인됐다. 만약 정말로 김주애가 북한 긴급 사태에서 최고위 자리에 등극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가장 유력한 시나리오는 섭정에 나설 어머니 리설주와 김여정의 권력투쟁 과정을 거치리란 것이다. 북한으로서는 매우 위험한 시나리오임에 분명하다. 이러한 권력의 균열은 필연적으로 김여정에 의한 쿠데타 또는 김여정 세력의 대규모 숙청으로 이어질 개연성이 높아 보인다. 군부나 최고 권력층이 이 싸움에 가세하리란 것은 자명한 일이며, 그들이 어느 쪽에 붙느냐에 따라 쿠데타와 피바람 중 하나가 될 것이다.
또 하나의 시나리오는 매우 낮은 확률이지만 김주애-리설주 모녀와 김여정, 그리고 북한 권부가 이심전심으로 체제 유지를 위해 윈-윈 관계로 가는 것이다. 이들에게 체제 유지란, 자신들이 누려 온 기득권 유지를 의미하므로 공멸을 막자는 뜻으로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들이 급변사태를 맞는다면 북한 정권과 개인의 기득권을 동시에 지킬 수 있는 선택 옵션이 많지 않다는 점에서 전혀 개연성이 없는 일은 아니다.
김정은이 지금 어떤 생각을 가졌든 4대 세습은 일어나서도 안 되지만, 일어나기도 어려운 가정임에 분명하다. 그 이유는 자명하다. 지금 북한 주민들의 의식이 깨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북한의 40~50대 장년층을 이루는 사회 주축 세력은 이른바 장마당 세대를 중심으로 김일성이 주창한 주체의식이 아닌 장마당의 자유경쟁 체제가 길러낸 자주의식을 가진 계층이다.
물론 이 점을 김정은도 잘 알고 있다. 대안이 없을 뿐이다. 여러분이 김정은이라면 어떻게 대처할 수 있을까.
만약 나라면 독재의 전지전능 신드롬에서 벗어나 권력과 행정을 분리해 행정만이라도 독립적인 정책 입안이 가능한 전문 관료 체제로 정착시켜 나갈 것 같다. 1인 유일체제의 리스크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지금으로선 가장 중요하다. 어쩌면 북한은 지금 세상 모든 나라가 능동적인 훈련을 받은 11명의 선수들로 집단지성(集團知性)의 축구를 하는 가운데 김정은 혼자 기물(棋物,말)을 움직이며 힘겨운 체스 게임을 하는 모양새가 아닐까?
어차피 북한 절대 권력의 도그마는 실패와 내외부 변화로 인해 많은 상처를 받았고, 앞으로 더욱 그럴 것이다. 최근 김정은이 주체사상의 창시자인 할아버지 김일성과 아버지 김정일의 그늘로부터 벗어나려는 개혁적인 생각을 펼치고 있다. 그러하기에 그 연장선에서 충분히 고려할만한 대안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