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물난리가 적은 건 ‘요곡(撓曲)’ 때문
한 나라의 영토는 그 나라가 쓸 물을 담는 그릇과 같다.
그 그릇에 부족한 물이 담기거나 넘치기라도 한다면 재앙이 된다. 세상 어느 나라도 담길 물과 쓸 물의 양이 적당한 그릇을 가진 경우는 없다. 그래서 모든 정치 지도자는 그 그릇을 바꾸어 보거나 물을 다스려 보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만약 그 그릇 자체가 완전히 잘못된 모양과 용량을 가졌다면 어떤 결과가 올까. 해마다 재앙이 덮친다. 중국이 바로 그런 그릇을 가진 나라다. 한반도의 치수환경과 대비되는 모델이 바로 중국이다.
티베트고원으로부터 쏟아지는 물
올해도 중국은 홍수로 심각한 물난리를 겪고 있다. 이는 매년 겪는 일이기도 하다. 중국은 영토 자체가 물 관리에 최악의 조건을 가졌다. 서북쪽에 해당하는 티베트와 칭하이성 일대가 해발 4천m~8천m에 이르는 고원지대이다. 그런데 이 지대가 너무 넓어 비가 내리면 엄청난 물이 양쯔강(揚子江, 혹은 長江)으로 유입된다. 양쯔강 하류인 중국 동남부는 저지대라 물이 빠져나가는 속도가 느리고, 강이 범람하면 도시나 평야 전체가 물바다로 변한다.
이럴 경우 보통은 여러 개의 댐을 막아 저수 공간을 넓히면 치수가 가능하지만 양쯔강은 그렇지가 못하다. 나일강, 아마존강 다음으로 길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긴 6,380km나 되는 중국 최대 강인 양쯔강은 주로 티베트 고원으로부터 내려오는 물을 감당할 수 없다.
우선 엄청난 유량은 고사하고, 해발 4천m 고원에서 쓰촨분지를 향해 흘러내리는 빠른 유속 때문에 감당이 안 되는 조건을 가진 게 바로 양쯔강이다. 알다시피 티베트고원과 쓰촨분지는 아주 가깝고, 급경사 지형으로 만난다. 그래서 이 강엔 세계 최대의 댐인 싼샤댐을 비롯해 상류에도 샹자댐과 시뤄두댐, 거저우댐 등 많은 댐을 세웠지만 역부족이었다. 원천적으로 지형지세가 치수에 부적합한 환경을 가진 것으로밖에 해석할 수 없다.
여기에 싼샤댐이 언제 수문을 개방하느냐가 재난의 수위를 결정한다. 싼샤댐이 버티는 데도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댐 수문이 열리면 물난리가 물폭탄으로 변하게 된다. 여름마다 물폭탄이라는 말이 그냥 나오는 말이 아니다.
결정적으로 양쯔강 하류의 중국 동남부 지역은 완전한 평지다. 물이 유입되는 속도가 매우 빠른 데 반해 빠지는 속도가 매우 느린 것이 문제다. 그래서 중하류 지역에서는 매년 수십만 명의 이재민을 내고, 수백~수천 명의 목숨을 빼앗아 가는 중국 남부의 홍수는 이제 그들에게도 거의 숙명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우리는 여기서 한국의 사정을 비교해보지 않을 수 없다. 우리도 여름에 물난리를 겪지만 그 정도가 다르다. 한국은 ‘영토=물그릇’이라는 비유에서 하늘의 축복을 받았다고 해도 모자랄 정도로 산과 강이 기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알고 보면 전혀 국뽕이 아니다.
먼저 양쯔강의 수계도를 보면 한국의 강이 금방 이해가 간다. 중요한 점은 수계와 이를 형성하는 주변 지형의 상관관계이다.
고등학교 지리 시간에 ‘경동 요곡운동(傾動 撓曲運動)’이란 말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신생대 제3기에 일어난 요곡이다. 신생대는 6,550만 년 전 시작되어 2,300만 년까지 지구의 지각이 엄청난 격변을 겪은 시기다. 이 시기에 한반도 땅 전체에서 요곡운동이 일어났다. 그 중에서도 강원도 서남부에서 요곡운동이 집중적으로 일어났다.
한마디로 한반도 지형이 동쪽으로 솟아오르면서 백두대간이 형성되었고, 여기에 심한 지각 압력에 의해 뒤틀리고 변형된 것을 경동 요곡이라 말한다. 뒤틀리면서 하천 흐름이 매우 복잡하게 변했다. 이때 지금의 한강과 낙동강 중상류에서 강줄기가 아주 복잡하게 변하면서 국토 규모에 비해 매우 길어진 강에 복잡한 지류들이 형성된 것이다.
이 결과 복잡한 지형을 뚫고 흐르는 강이 감입곡류(嵌入曲流) 하천을 수없이 만들어 나간다. 이 역시 저수량을 높이는 효과를 가져온다. 결과적으로 복잡한 지형과 수계(水系) 때문에 유역에 저장되는 물의 양이 풍부해진 셈이다. 비유하자면 강수량에 비해 이를 가둘 수 있는 그릇의 용량이 상대적으로 커진 것이다.
그렇다면 한강의 수계도를 보자.
위의 양쯔강 수계도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느낄 수도 있다. 그러나 완전히 다른 형태다. 우선 한강은 길이에 비해 아주 넓은 지역인 강원도 전체로부터 물이 모인다. 경사도가 그리 급하지 않게 굽이굽이 돌아 천천히 모여드는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남한강 중상류인 단양-충주, 북한강 상류인 소양호, 의암호처럼 대형 댐 몇 개만 막으면 물의 통제가 가능하다는 점이다. 그 아래 팔당댐은 식수원 역할이 더 큰 셈이다.
이렇게 몇 개의 댐을 건설하고, 강의 제방을 정비하자 80년대까지 물난리를 겪던 서울 등지의 수해가 완벽하게 사라졌다. 양쯔강과 달리 통제 가능한 강이 한강이다. 이런 상황은 낙동강이나 금강, 영산강도 마찬가지다. 국토가 주는 축복이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지질학적으로는 오로지 경동-요곡 지형의 혜택이다. 그렇다면 양쯔강 지역에서는 요곡운동이 일어나지 않은 것인가. 쓰촨분지 주변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양쯔강 규모로 볼 때 요곡만으로 그 대단한 상류의 고도 격차를 해소하여 쏟아지는 물을 분산하거나 유역이 넓은 댐의 입지를 확보하기엔 턱없이 부족했던 것이다.
강은 인간에게 도시를 이룰 퇴적지형을 만들어 주고, 작은 퇴적지형인 테라스 지대에는 평야를 선물한다. 그러나 강은 범람하는 순간 재앙을 선사하는 악마의 얼굴도 함께 가지고 있다.
오늘은 우리 강들이 주는 혜택에 대해 말했다. 그러나 이 이야기의 결어에서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는 지점이 있다. 엄청난 축복으로만 보이는 한국의 강들은 그러나 축복만이 아니다. 한강과 낙동강의 상류 지대가 광산 개발과 폐광 때문에 심각한 오염의 몸살을 앓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정부도 국민도 깊이 고민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 더 놀랍다.
하늘이 내려준 축복의 강, 산업발전을 위해 피할 수 없었던 광미(광물 찌꺼기) 오염, 이 양자의 모순을 다음 세대에 이대로 물려줄 것인가. 우리 세대에서 해결함으로써 하늘이 준 축복을 후세에 돌려줄 것인가.
산업화 세대와 그 혜택을 누린 우리가 지금 선택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