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혜, ‘거란 장수’의 힘을 보았다” -파리올림픽
이번 파리올림픽을 보는 관전 포인트로서 나는 단연 탁구의 이은혜를 꼽는다.
이은혜는 중국에서 태어나 2011년 양영자(전 탁구 국가대표) 선교사에 의해 한국으로 귀화한 선수다. 이번 올림픽에서 이은혜는 단체전 동메달을 따냈다. 빠른 백핸드와 강한 포핸드가 그의 장점이다. 무엇보다 큰 무기는 흔들리지 않는 맨탈리티이다. 그는 대표팀에 합류하기까지 겪은 고생을 떠올리며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나는 그가 파리올림픽 경기를 진행하는 모습을 보면서 ‘거란족 장수’ 같은 호쾌한 인상을 떠올렸다. 거란 장수의 힘은 파리를 완전히 뒤흔들기에 충분했다. 이은혜는 다름 아닌 거란족의 후예인 다우르족 출신이다. 다우르족의 선조인 거란족은 흉노족의 후손인 선비족으로부터 갈라져 나온 몽골 남부 유목민이다.
그런데 지금 중국에서는 이은혜와 함께 중국 귀화선수인 전지희 선수에 대해 비판하는 여론이 있다. 국적을 바꾼 배신자라는 게 비판의 핵심이다. 그 비판 자체를 탓할 생각은 없으나 이 대목에서 우리가 생각해 봐야 할 한 가지 새로운 관점에 대해 말하고 싶다.
‘이은혜’는 언제부터 중국인이었을까?
여기서 ‘이은혜’는 이은혜 선수가 지닌 고유한 정체성, 그러니까 그의 유전인자가 지닌 아이덴티티를 말한다.
적어도 그는 약 1천 년 전에는 우리와 동족이었다. 거란족이 역사에 본격적으로 데뷔한 시기는 야율아보기가 주변 유목민 부족을 통일한 10세기 무렵이었다. 그는 916년 현재의 네이멍구자치구에 상경(上京)을 중심으로 요나라를 건국했다. 지금도 유럽인들은 중국을 키타이 또는 케세이라 부르는데 이 말이 바로 거란족을 일컫는 말이다. 그 이전의 거란족은 동호족 또는 선비족 일원으로 고조선과 신라, 당나라의 중요한 구성원이었다. 우리 민족과 떼려야 뗄 수 없는 혈족이다. 심지어 동호족은 고조선의 기층 민족이었다는 학설이 지배적이다.
이쯤 되면 국적이란 개념을 다시 돌아봐야 한다. 이은혜의 국적은 원래 중국이 맞다. 이때 국적이란 영토를 근간으로 하는 국가를 그 기준으로 삼는다. 그러나 영토는 가변적인 것인 반면 혈통은 불변하는 것이란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 고대에 그랬듯이 미래에 만주와 네이멍구 지역이 몽골의 일부가 될 수도, 한국의 일부가 될 수도 있다. 이것은 가정이지만, 이 지역이 원래 그런 지역이었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나는 이은혜의 정체성에 대해 다시 정의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원천적으로 동이족(東夷族)의 일원이란 점이 명백하다. 그 점은 법률적인 국적 개념과 상관없는 불변의 정체성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는 법률적인 국적을 대한민국으로 바꾼 상태이다. 따라서 이은혜는 현재 99.9% 한국인과 일치하는 정체성을 가진다. 그는 단지 잠시 중국인으로 살았던 것뿐이다.
핏줄이 당긴다는 뜻
이점은 만주족 혈통을 가진 전지희도 마찬가지다. 만주족의 역사서인 <만주원류고>에는 그들 자신의 선조에 대해 “신라에서 왔다”라고 명확하게 쓰고 있다. 청나라를 세운 만주족의 뿌리는 신라에 있는 것이다.
만약 이은혜와 전지희가 옛날처럼 성씨를 새로 만들어 한 씨족의 시조가 된다면 수원백씨나 덕수장씨, 청해이씨처럼 우리의 일원이 될 것이다. 과연 수원백씨의 시조인 백우경(白宇經)이나 청해이씨 시조인 여진족 이지란(李之蘭)은 이 나라를 남의 나라로 인식한 채 귀화한 것일까 생각해 봐야 한다. 당시 사람들의 민족 의식은 지금 우리와 달랐기 때문이다. 자기 조상의 혈통과 이어진 민족임을 귀화의 동기로 삼았을 거라 나는 확신한다.
‘핏줄이 당긴다’라는 말이 있다. 낯선 사람을 만나서도 남 같지 않게 느껴지는 사람들이 있지 않은가. 나는 이번 파리올림픽에서 동메달을 안고 기뻐하는 전지희, 이은혜, 신유빈의 모습을 보면서 자매 같다는 느낌과 함께 핏줄의 무서움을 다시 한번 느꼈다.
두 사람 역시 탁구를 위한 이유만이 아니라 대한민국에 대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런 핏줄 당김을 느껴 귀화하게 되었을 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