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통 벗는 중국인 ‘속 답답한’ 사정?
요즘 같은 여름철이면 단골로 등장하는 게 ‘베이징 비키니’ 뉴스다. 웃통을 벗고 다니는 중국인들, 잠옷 바람으로 도심에 나타난 상하이 시민들.
이런 모습이 외신들에 의해 전해지자 중국 당국이 벌금을 부과하고, 강력하게 단속해보았으나 전혀 나아지지 않는다는 뉴스가 어제오늘도 전해진다. 벌금도 아랑곳없다고? 무슨 속사정이 있는 게 아닐까?
이런 웃통 벗기 행태가 문화적으로나 보기에 좋지 않다는 점을 분명히 전제해둔다. 그러나 이를 비문명적인 현상으로만 매도하는 데 대해 나는 단호하게 반대한다. 이것은 문명의 문제가 아니라 체질적인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에 대한 확실한 이유를 설명해 보려 한다.
나의 짧은 경험담을 들려준다면 금세 이해할 것이다.
2010년 중국 선양(瀋陽).
나는 한 달쯤 아주 불편한 공간에서 이십여 명의 중국인들과 한 공간에서 지내본 적이 있다. 중국인들이 한국인들에 비해 자주 씻지 않는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때는 1월 중순, 한겨울이었다. 계절에 상관없이 이틀 동안 샤워를 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나로서는 작은 세면용 바가지에 여러 번 수돗물을 받아 씻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 나를 동물원 원숭이 보듯 하는 중국 친구들의 눈길이 아주 부담스러웠다. “저 한국 사람, 어제 씻었는데 또 씻는다”라고 뒤에서 수군거리는 소리도 들었다. 못 들은 척했다. 나도 다 내 사정이 있는 거잖아. 그렇다. 거기에선 내가 원숭이 맞았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그런데 중국 친구들 상황은 어땠을까. 머리를 감기는커녕 열흘이 넘어서도 수건에 물을 묻혀 스윽~ 얼굴과 몸을 대충 닦는 걸로도 그들은 전혀 불편을 느끼지 않았다. 며칠 동안 계속해서 그들의 위생활동에 대해 관찰해 보았다. 나는 참을 수 없는 호기심이 발동했다. 그래서 한 친구의 팔을 만져 보았다. 또 다른 서너 명 친구들의 팔도 만져 보았다. 나는 정말 깜짝 놀랐다.
이게 무슨 일인가. 그들의 피부는 나와 달랐다. 마치 기름기로 코팅이 된 것처럼 매끈했다. 한국인 피부처럼 먼지나 습기가 끼면 때가 되거나 근질근질한 그런 피부가 아니었다. 매우 새롭고 놀라운 경험이었다.
중국 둥베이(東北) 지방에서는 옛날부터 겨울철에 돼지기름 같은 것을 피부에 바른다는 삼국지 <위지 동이전> 얘기가 갑자기 떠올랐다. 퉁구스족을 설명하는 대목이었다. 허허벌판 만주의 추위를 이겨내기 위한 섭생법인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기름기가 많은 음식을 먹고, 야채도 반드시 기름에 볶아 먹는다. 황토나 석회질이 섞인 물 때문에 볶거나 튀겨 먹는 게 가장 안전하다는 인식 때문이다.
당연히 중국인들에게 봄에서 여름까지 기간은 속이 답답한 시절이다. 땀을 통해 열이 몸 밖으로 빠져나가기 어려운 체질인 것이다. 어쩌겠는가. 웃통이라도 벗어야 견딜 수 있는 것을. 우리가 야만이라고 생각하는 그 모습이 체질적인 한계 때문이라면 우리가 생각을 바꿔야 한다. 우리 생각이 짧은 것이다.
동물학에서는 알렌의 법칙(Allen’s rule)이란 게 있다. 위도가 높은 추운 지역에 사는 동물일수록 신체의 말단부(돌출부)가 짧아지는 현상을 말한다. 표면적을 줄여 체온 유지를 위해서 이러한 경향이 생긴다. 사람 역시 추위에 적응하기 위해 피부에 지방질을 저장하는 것이다. 그러니 당연히 그들에겐 여름이 아주 괴로운 시간이다.
기후와 음식, 생활 습관이 다른 중국인들이 우리와 얼굴이 비슷하가도 해서 체질적으로 같은 동북 아시아인이라 생각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들의 ‘답답한 속사정’을 알고 ‘베이징 비키니’ 뉴스를 본다면 어떨까.
아프리카 사람들은 웃통을 아예 벗고 짧은 팬티만 걸치고 다니지만 그 누구도 비난하지 않는다. 그러나 아시아인들에게는 문제가 된다. 이는 순전히 문화적인 인식이다. 편견에 가깝다고 말해도 무방하다.
우리가 자식을 키울 때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말해도 고쳐지지 않고 고집을 부릴 때가 있다. 그럴 때는 “얘가 무슨 딴 사정이 있나?”라고 의심해 봐야 한다. 중국인의 ‘웃통’이 바로 그런 것이다. 문화적 톨레랑스(寬容) 역시 그런 것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