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시대 손가락 하나라도 다치면 북한 다 죽어!”
“한국에 대포 쏘는 건 좋은데, 소녀시대 손가락 하나라도 다치는 날엔 북한 너희들 모조리 내 손에 다 죽는다!”
2010년 북한의 연평도 포격 사건이 발생한 다음 날 중국 포털 시나닷컴에 올라온 한 중국 네티즌의 댓글인데요. 한국을 소녀시대와 동격으로 인식한 한 중국인의 이런 인식이 너무 재미있어 ‘중국인들이 보는 북한 연평도 포격’이란 스케치 뉴스를 쓴 기억이 있습니다. 당시 중국에서 살던 나의 가족들은 밤에도 끊이지 않고 거리에서 흘러나오는 소녀시대, 원더걸스의 노래나 이정현의 ‘와’와 같은 노래 때문에 밤잠을 설쳤지만, 즐거웠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BTS 정국을 보유한 국가, 대한민국
왜 갑자기 철 지난 연평도-소녀시대 얘기를 하는가 하시겠지만요. 세계인들의 이런 인식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소녀시대를 지금의 BTS(방탄소년단) 정국에 대입해 봐도 같은 답이 나올 거라 생각합니다.
전 세계 한류 K팝 팬들과 특히 아미(ARMY)들이 열광하는 정국. 그들에게 정국은 대한민국과 동의어이거나 상위 범주 개념일 것입니다. 그들에게 대한민국이 주는 의미보다 정국이 주는 의미가 더 크기 때문이죠.
한류의 힘이라는 의미보다 대한민국은 ‘정국 보유국가’라는 의미가 더 적합한 표현이겠죠. BTS 정국은 본명이 전정국(田楨國)으로 1997년 부산에서 태어난 아주 젊은 가수입니다. 27살 난 한 가수가 대한민국이 지닌 가치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는 것 자체가 지금 한류의 위상을 잘 보여줍니다.
정국은 소울/펑크(soul/funk) 장르에서 마이클 젝슨 이후 최고로 평가받는 브루노 마스(Bruno Mars)를 능가하는 가수로 평가받는다.
특히 카타르 2022 월드컵 개막식에서 그가 부른 ‘Dreamers’가 세계인들에게 준 임팩트는 너무나 강했습니다. 이어서 이 노래는 곧 조회수 1억 뷰를 넘으면서 엄청난 인기를 모았고요. 이제 BTS는 세계 최고의 그룹으로 독보적인 위치를 쌓아가고 있습니다. 이제 세계인들의 눈에 정국으로 대표되는 한류 스타를 빼고 대한민국을 인식하는 것은 생각하기 어려운 게 현실입니다.
나라 이끄는 힘, 한류는 무엇인가?
몇 년 전, 유럽에서 열린 K팝 공연을 보기 위해 스타디움에 모여든 소녀들 중 하나가 대뜸 이런 말을 하더군요.
“나는 젓가락질도 할 줄 알아요. 한국 가수들이 밥 먹을 때 젓가락 쓰는 모습이 너무 좋아 배웠어요.”
그가 K팝을 통해 배운 것은 젓가락이 전부가 아닐 것입니다. 설마 젓가락질 연습하면서 햄버거를 먹진 않았을 테죠. 한국 음식이나 패션도 배웠을 것이 분명하죠. 그가 배운 것 중 가장 어려운 것이 젓가락 아니었을까, 나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전 세계 K푸드, K뷰티의 뒤엔 한류가 있다는 사실은 잘 알려졌고요.
이처럼 한류는 세계인들의 문화와 생활을 바꾸고 있습니다. 한류의 힘은 바로 그런 것이죠. 감성을 움직이고, 마음을 움직여 한국적인 정서와 동질화(Identification)하는 그런 힘입니다.
동남아시아 한류는 화교(華僑)가 그 중심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특히 이슬람권인 인도네시아가 한류 바람에 휩싸인 것은 화교 덕분이라는 분석이 있습니다. 화교 뿐이겠습니까? 한국에 돈 벌러 온 외국인 노동자들, 외교 라인, 랜선 전파력 등이 한류의 통로가 됐을 겁니다.
대부분의 한류 영향권 나라에서 부는 한국어 배우기 열풍은 놀라운 효과입니다. 특히 인도네시아 한류 팬들은 한국 드라마에 나오는 주인공의 마음을 이해하기 위해 한국어를 배운다고들 하죠. 제2외국어로 한국어를 채택한 학교도 많다고 합니다. 심지어 몽골에서는 한국어로 기본적인 대화가 가능한 경우가 많다고도 합니다. 동남아시아 국가들 일부 직종에서는 한국어를 알면 월급이 2배라는 말이 있습니다. 정말 놀라운 일 아닌가요?
지금 한류는 지구 구석구석까지 뻗어나가고 있고, 휴전선과 압록강을 넘어 북한으로도 전파되고 있습니다. 이른바 장마당 세대들에게 한류는 이제 생활문화가 되었고, 만약 북한이 무너진다면 한류의 힘이 크게 작용한 점을 부인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이렇듯 한 편의 드라마와 한 소절의 음악이 주는 감성적 공감 능력은 K-9 자주포나 현무-5 미사일보다 강합니다. 한류는 그 자체로서 하나의 거대한 산업이자, 국가 백년대계를 위한 기초이기도 합니다. 이제 이 한류를 진정한 국가 소프트-파워로 길러나가는 전문적인 정책 전략이 필요한 시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