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수한 예를 들어 전체를 판단할 때 생기는 오류를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Fallacy of Hasty Generalization)’라 한다. 1961년 미국 철학자 어빙 코피(Irving Copi)가 <논리학 입문>에서 말한 유명한 논리학 정의다.
지금 천문학과 물리학에서 이러한 오류가 속속 등장하고 있지 않나 의심된다. 아니, 의도적으로 남발하는 게 아닌가 의심해 본다.
“우주는 넓고, 생명으로 가득한 공간이다.”
이는 천문학자 칼 세이건이 유명한 그의 저서 <코스모스>에서 한 말이다. 우리는 그렇게 믿었다. 나는 대학 시절 <코스모스>를 읽고 너무 벅찬 감정에 많은 글을 썼던 기억이 있다. 40년이 지난 지금 다시 보면 그것은 과학이라기보다는 확률론이다.
아직 지구 밖에서 발견된 생명현상은 없다. 이 사실 자체가 천문학자들에겐 큰 충격이지만, 여전히 그들은 확률의 문제라고 주장한다. 논리학적으로는 확률의 오류가 될 개연성이 높아 보인다. 심지어 NASA에서 외계인이 지구를 방문한 증거를 숨기고 있다는 음모론이 난무하기도 한다. 이런 이야기는 논외로 하자. 그렇다면 생명현상이 확인되지 않았다는 것은 어떤 근거인가?
우선 천문학자들은 지난 1960년 4월부터 외계 지적 생명체 탐사 프로젝트를 추진해 왔다. 오즈마 프로젝트, SETI 프로젝트 등으로 불린다. 그 결과 외계로부터 오는 것으로 의심되는 이상한 전파신호를 감지한 적은 몇 차례 있으나, 지적 생명체로부터 온 것으로 확인된 사례는 단 한 건도 없었다. 적어도 ‘온 우주에 생명현상이 가득’이라는 관점은 수정되어야 한다. 그것이 코페르니쿠스 이전의 천동설(天動說)과 다를 게 별로 없다.
금성(Venus)에는 금성인(金星人)이 산다, 화성(Mars)엔 화성인(火星人)이 산다는 이야기는 아주 오래된 이야기다. 구 소련을 비롯해 금성에 여러 차례 탐사선을 보낸 결과 거기엔 최고 온도 755K(482°C), 평균 온도 730K(457°C)의 불지옥이라는 사실만 확인했다. 화성은 어떤가. 바이킹, 망갈리안, 오퍼튜니티, 큐리오시티 등 수많은 화성 탐사선이 보내졌지만 아직 뚜렷한 생명 증거를 보내오진 않고 있다. 과거 박테리아가 살았던 흔적이라 주장한 사진이 있었지만 의견이 분분할 뿐이다.
사실 금성과 화성 탐사에서 보여준 결과는 매우 의미심장하다. 사람들은 이렇게 물을 것이다. 아직 행성 2개만 제대로 탐사했는데 포기하기엔 이르지 않냐고? 아니다. 어쩌면 미래 백 년 정도는 인간이 제대로 탐사할 수 있는 행성이 이 두 개밖에 없을 수 있다. 태양계에서 가능성이 높은 건 이 두 개 뿐이다.
학자들은 태양계에서 지구를 제외하면 수성과 금성, 화성 3개뿐인 암석형 행성에서 찾지 못하고, 가스형 천체인 토성의 위성 타이탄과 목성의 위성들에 생명이 있을 개연성을 주장하지만, 화성에 비하면 억지에 가깝다. 좀 특이한 행성이나 위성이 나오면 생명체가 있을 거라고 주장하는 것과 뭐가 다른가.
태양계에 없다면 가장 가까운 항성계는 프록시마 센타우리인데, 빛의 속도로 가도 4.2년이 걸린다. 역대 가장 빠른 우주선으로 1초에 17km로 날아가는 보이저 1호의 속도로는 약 7만 년 걸린다. 인간이 수백 년 안에는 갈 수 없다. 그 사이 공간은 정말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는 진공이다. 전체의 99.99999%가 진공인 우주에 생명이 가득하다는 논리는 그 자체로서 공허하다.
화성 테라포밍(Terraforming)도 마찬가지다. 지구에 최적화하기 위해 목숨 걸고 진화한 인간이 몇 가지 지구와 비슷한 조건을 만든다고 거기에서도 생존할 수 있다는 것은 인류가 쌓아 온 다양한 생태학적 지식을 외면하는 오만이다. 심지어 혈관 속에 흐르는 피 한 방울마저 지구의 고유한 중력 조건에 맞춰 최적화한 상태라는 점을 기억하기 바란다.
화성을 지구처럼 만들 수 있다면 지금 우리가 인류의 생존을 걸고 도전하는 온난화 극복과 탄소중립 실현은 일도 아니란 말인가? 지금 이 심각한 고민들은 다 무엇이란 말인가. 온난화와 기후 이상 현상, 해수면 상승 등 지구가 병들어가고 있지 않은가. 인류가 우주에 쏟는 노력의 1/10이라도 먼저 지구에 쏟는 게 어떨까?
나는 우주 과학자들의 의도와 노력을 평가절하할 생각이 추호도 없다. 하지만 이것 하나만은 반드시 강조하고 싶다.
지구에 있는 모든 것들이 우주에 널려 있다는 생각은 재고해 주면 좋겠다. 우주는 보편성이 지배하는 물리학적 공간이 맞다. 그렇다고 해서 생명현상까지 포함된다는 가정은 일반화의 성급한 오류일 수 있다. 왜냐하면 지구에서도 생명이 태어난 것이 아주 우연한 일일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명현상이라 부르는 것은 박테리아 정도는 아니다. 원시 단세포 생물 단계에서 다세포 단계를 거쳐 생물 종의 분화가 폭발적으로 일어나야만 생태계가 만들어지고, 다양한 종 중에서 진화한 종이 출현할 수 있다. 보통 지구에서 이 시기를 고생대라 말한다. 현생누대의 첫 번째 시기로서 5억4,200만 년 전부터 2억5,100만 년 전까지를 말한다.
원시 지구에서 아미노산 합성이 시작된 후 우여곡절을 거쳐 태어난 단세포 생물들이 산호초, 또는 삼엽충으로, 거기서 다시 영장류로 진화해 간 것이 필연이라고 나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 우주가 필연이라는 법칙과 어울린다고 생각하는가? 더욱이 생명현상에서 그런 필연은 가정하기 어려운 일이다.
지구는 생명체에게 아주 안락한 환경이었을 지도 모른다. 지구 역시 가혹한 변화를 겪었지만, 이보다 더 가혹한 조건이라면 모든 생명 종이 멸종하는 일이 일어났을 것이며, 앞으로도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 특히 지구가 생성되고 나서 영장류가 탄생하기까지는 지구 역사 46억 년 중 마지막 6,500만 년이 되어서야 가능했던 것임을 기억하자. 필연이었다면 왜 그 긴 시간이 필요했을까.
영장류라는 개념조차도 아주 모호하다. 극단적인 예를 들어 지능이 낮은 인간보다 높은 지능을 가졌다는 돌고래를 생각해 보자. 대화를 하고, 감성까지 발달했다는 돌고래가 아무리 지능이 높아진들 우리는 영장류라 부르지 않을 것이다. 지능과 함께 도구를 다루는 기능과 정보를 축적하는 기술을 확보하고, 협력을 통해 문명을 일군 생명체를 영장류라 규정해도 무리가 없다.
과연 모든 지능을 가진 생명체가 지구의 영장류처럼 진화해 갈 것이란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지구의 인류는 그런 희소성과 존귀함의 가치를 지닌 고등생물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일부 물리학자들은 우리 우주가 아직 충분한 성숙단계에 이르지 못해 우연에 의해 태어난 생명현상이 고등동물로 진화하기에 너무 이른 시점이라는 해석을 내놓기도 한다. 이쯤에서 우주의 생명체 존재와 영장류 존재를 따로 떼어 탐구하는 게 어떨까 생각해 본다.
우리 지구에서는 수많은 우연과 우연의 반복에 의해 원시 생명이 태어나고, 또 다른 우연적 요소가 겹치면서 생물 종의 폭발적 분화가 일어났으며, 이는 우주에서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이쯤에서 받아들여야 한다. 적어도 그런 가정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따라서 우리의 생각도 달라져야 한다. 지구와 흡사한 환경, 흡사한 지질학적 현상이 동반되어 그 속에서 우연히 일어난 생명현상을 우주에서 기대하는 것은 해변에서 바늘 찾기가 아니라 어빙 코비가 말한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나로서는 확고하다.
저 먼 은하 한 구석에서 박테리아를 찾아내는 일이 인류에게 어떤 의미일까. 설령 고도로 발달한 문명으로부터 날아 온 전파를 잡는다 하더라도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매우 제한적이다.
어쩌면 우주에서 유일하거나 매우 희귀한 존재일지 모르는 고등동물인 우리 인간과 지구와 생태계에 대해 좀 더 사랑하고, 가꾸자. 그것이 화성이나 우주에서 생명체를 찾는 일보다 훨씬, 절대적으로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