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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친구> “조오련은 바다거북이를 이기지 못할까?”

by 직관직설 2024. 8.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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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거북이 대사 장면 @ 영화 친구 캡처

 

 아시아의 물개 조오련과 바다에 적응한 느려터진 거북이가 수영 시합을 하면 누가 이길까?
 
영화 <친구>(2001, 곽경택)에 나오는 유명한 대사다. 동수(장동건)는 방파제에 앉아 바다를 보며 부하 은기(정호빈)에게 그렇게 물었다. 친구 준석(유오성)의 보스 형두(기주봉)가 경찰에 체포되도록 동수가 밀고한 날이었다. 동수의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그 타깃은 바로 준석이었다.
 
동수가 가진 조오련과 바다거북이에 대한 강한 의문은 매우 철학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동수의 마음속에는 친구 준석을 이겨 보겠다는 강한 승부욕이 불타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동수는 조오련이며, 준석은 바다거북이다. 깡패가 된 두 친구는 경쟁자이다. 준석은 동수를 선의의 경쟁자로, 동수는 준석을 극복의 대상으로 본다는 점이 다르다.
 
이는 다분히 운명 결정론(Determinism)의 비극을 예고한다. 장의사 아버지를 둔 동수와 깡패 보스 아버지를 둔 준석의 싸움은 사실 동수의 이 질문에 의해 동수의 죽음을 예고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는 사람의 운명이 미리 예정되어 있다는 결정론을 따라가고 있다는 인식의 한계를 내포한다. 

아버지 직업을 묻는 교사 @영화 친구 캡처

 

 그렇다. 이 영화 곳곳에는 이러한 결정론적 세계관이 강하게 묻어나고 있다. 그 유명한 대사인 “아부지 뭐하시노?”라는 대사 역시 이를 함축한다. 어쩌면 동수는 이 장면에서 “장의삽니다”라고 말하면서 느꼈던 굴욕감을 씻어내기 위해 준석을 이겨 보겠다는 의지를 불태웠을 것이다.
 
그래서 영화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려 하는가.
 
바다에 뛰어든 조오련은 이미 바다거북이의 영역을 침범한 그 무엇에 불과하다. 동수는 준석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 그것을 동수나 준석 모두가 알고 있다. 다만 운명에 저항하려는 동수의 강한 의지가 불행을 불러온 것뿐이다. 그래서 두 친구는 불행이 눈앞에 찾아든 그 비오는 날까지 “동수 마이 컸네!”, “키는 원래 내가 니보다 컸다 아이가!”라는 말로 맞섰던 것이다.
 
이미 오래 전, 학창시절에 두 사람은 이런 대화를 주고 받았다. 자신의 여자친구인 진숙(고 김보경)을 상택(서태화)에게 붙여준 준석에게 동수는 “나는 니 시다바리가?”라며 거칠게 반발했다. 이에 준석은 “죽고 싶나?”라며 압박하고, 동수는 혼자서 거울을 보며 “죽고 싶나?”라는 말을 되뇌었다. 이 대사야말로 거울 속 자신에게 죽음을 암시하는 경고와 다르지 않다.
 
하와이. 준석의 부하를 처참하게 살해한 동수는 결코 하와이에 가지 않는다. 하와이를 가는 것은 준석에게 패배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동수는 준석에게 “니가 가라, 하와이”라 말한다. 여기서 하와이는 와이키키 해변이 있는 하와이가 아니다. 동수에게는 패배와 피신의 땅이며, 준석에게는 승자의 도피처이다. 그래서 준석은 하와이에 가겠다고 말한다. 영화에서 하와이는 처절한 승부의 세계 바깥에 존재하는 영역이다. 갈등을 화해하고, 운명을 해소하는 영역을 상징하고 있다.
 

동수의 최후 모습 @영화 친구 캡처

 
“마이 뭇다 아이가, 고마 해라!” 이 유명한 대사는 또 무엇을 말하려는가. 경상도에서 ‘뭇다(먹었다)’라는 표현은 영화에서처럼 ‘(칼이) 내 뱃속에 많이 들어 왔다’라는 의미겠지만, 내포적 의미로는 “충분하다” 또는 “알겠다”라는 뜻이다. 지금 동수가 바다거북이를 이길 수 없는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걸 처절한 몸부림을 통해 이 영화는 암시한다. 동수의 도전은 끝난 것이다. 이 말로서 영화는 어떤 여지도 남기지 않고, 운명 결정론의 함의를 에누리 없이 완결하고 있다.


 
정말로 인간은 주어진 운명을 극복하지 못하는 것인가?
“그렇다!”라고 명쾌하게 답해주는 것처럼 일목요연한 플롯으로 전개되는 영화 <친구>가 우리에게 진짜 하고 싶었던 말은 무엇이었을까. 운명에 도전하면 불행해진다는 운명 결정론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운명은 존재한다, 그러나 우리는 도전해야 한다.”
혹시 이런 슬픈 주문은 아니었을까. 패러독스가 아니었을까. 운명에 짓밟힌 패자의 캐릭터에 장동건이라는 당대 최고 배우를 투영한 곽경택 감독의 캐스팅에서 우리는 그런 메시지를 읽어내기에 어려움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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