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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통화녹음 폭로... 우리는 사막으로 간다”

by 직관직설 2024. 5.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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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xabay

 
최근 전화 통화 녹음이나 몰카 폭로로 온 나라가 시끄럽다.
최재영 목사의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 몰카 사건이 특검으로 가니 마니 하는 가운데 배현진 국민의힘 의원의 같은 당 이철규 의원 통화녹음 파일 폭로로 한 정당이 멘붕에 빠진 것이다.
 
과거 이준석 당선인 역시 가까운 정치인들과의 통화 녹음파일을 공개해 정치권을 아수라장으로 만든 일이 있었다. 가장 유명한 사건은 역시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욕설 파일과 부인 김혜경 여사의 조카 통화내용 폭로였다.
 
가끔 우리는 맘에 들지 않는 상대의 말을 녹음하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녹음하게 되면 폭로하고 싶은 충동도 느낄 것이다. 보복하고 싶은 심리 때문이다. 이때 폭로를 결심하는 이들의 공통점은 관용력보다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려는 집착력이 큰 경향에 있다.
 
자, 이렇게 정리해 보자. 상대가 해서는 안 되는 말을 했다고 치자. 녹음해서 폭로하면 과연 보복이 되는가? 된다. 상대는 일단 절망을 느낄 것이니까. 그러나 거기까지다. 그리고 폭로자에게는 만만찮은 후폭풍이 찾아든다. 그게 더 절망적이라는 사실을 폭로하고 난 다음에야 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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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폭로자에 대한 사회적 평가 역시 후할 리가 없다. 폭로자 자신의 인격에도 큰 상처를 주는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동의 없이 몰래 녹음한 것이니까. 더 중요한 이유는 이를 지켜보는 주위 사람들과 이 일을 접한 모든 이들 역시 잠재적인 피해의식을 느끼게 만든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이 피하려 든다거나 냉랭한 반응을 접할 것이다. 사람들은 그와 통화하는 것을 꺼리게 된다. 이준석 당선인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그 후로부터 주변인들에게 심각한 왕따를 당하는 중이라고 많은 정치인들이 전하고 있다. 정작 당사자는 태연한 체 하지만 정치인으로서의 주변 환경에 부정적인 인식이 쌓이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어느 시기부터 녹음 폭로가 이슈로 떠오르면서 사회가 삭막해지고 있다. 친한 공무원들과도 전화로는 부드러운 대화를 이끌어 가기 어려워졌다. 물론 만나서도 냉랭하긴 마찬가지다. 관공서에 전화하면 ‘녹음되고 있다’라는 안내 멘트가 나온다. 우리는 지금 사막화를 경험하고 있다. 이는 비즈니스를 하는 이들에게는 매우 답답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전화 통화뿐 아니라 카카오톡이나 소셜미디어에 남긴 글들도 문제가 된다. 지금 우리는 폭로만이 문제가 아니라 정치인, 유명인들에 대한 SNS 신상 털기까지 마치 그것이 사회적 유행인 양 즐기는 건 아닌가. 그리고 거기에 걸려든 먹잇감에 대해 잔인한 단죄를 하는 것으로 인격 살인도 마다하지 않는 그런 시대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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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행위의 사막화. 이 말로 규정할 수 있다. 통화든 댓글이든 아니면 글이든 시간이 좀 지나 보면 스스로에게도 겸연쩍은 일이 많을 것이다. 그 상황에서 자신의 감정에 충실했던 부끄러운 삶의 기록일 수 있고, 남에게 크고 작은 상처로 남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모든 행위가 만천하에 드러나고 인격이 매도되는 상황이라면 사회적 윤리 기준과 개인의 존엄성 모두를 충족할 수 없는 모순이 발생하게 된다는 점을 기억하자.
 
더욱이 이 사막화와 동시에 가장 삭막한 소통환경에 처하게 될 사람은 폭로한 그 자신이라는 점도 기억해야 한다. 아마도 이번 폭로 주역인 배현진 의원 역시 이와 같은 매마른 모래폭풍을 맞을 것이 거의 분명하다. 누가 그와 쉽게 터놓고 대화하기를 바랄 것이며, 그와 다른 의견을 말하겠는가. 과연 그게 배 의원이 원하거나 예상한 결말이었겠는가.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촘촘한 그물망처럼 복잡하게 얽혀 있다. 반드시 작용이 있으면 반작용이 나타나게 마련이다. 사람과 사람 간의 의미 있는 대화는 대부분 의견이나 관점의 차이에서 시작되며, 그 결과는 타협이거나 갈등으로 나타난다. 그것이 우리 삶의 한 부분이며, 어쩌면 진면목이기도 하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설령 상대가 나의 감성을 자극한다 하더라도 그것을 복수와 연결하는 것은 불필요한 파국을 낳는 어리석은 행동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폭로자들은 지금 후회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아직도 참을 수 없는 분노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주위 사람들의 외면과 충고로부터 반목의 시간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
 
지금 관용(寬容)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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