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대국(大國)이다. 그래서 앞뒤 안 재고 큰 걸 추구하는 것일까.
2007년 무렵 중국에 살 때 헤이룽장성 하얼빈에서 손아귀에 겨우 잡히는 붓대를 힘겹게 잡고 가슴까지 오는 큰 붓으로 공원 돌바닥에 글씨를 쓰는 서예가를 본 적이 있다. 수많은 관광객들이 모여들어 구경하는 와중에 호기심과 영웅심리가 발동해 나도 그 붓으로 글씨를 써보긴 했지만, 쓰면서 내내 “이게 뭐지?”라는 생각을 했다.
모든 것은 효용성에 맞는 모양새와 사이즈가 있는 법이다. 그러나 쓸데없이 크게 만들어 문제가 생긴 구조물이 중국에 유독 많다. 많은 정도가 아니라 대륙에 넘쳐난다. 큰 걸 추구하는 중국인들의 생각을 따라가 보자.
한 동에 3만 명이 사는 아파트
아파트 한 동에 약 3만 명이 산다? 정말 놀라운 발상이다. 보통 매머드급 아파트라면 주상복합형 고급 아파트를 생각하지만 중국 항저우의 일명 왕홍(网红) 아파트는 한국으로 치자면 서민 아파트 수준이다.
이 아파트는 커서 딱히 뭐가 불편하다기보다는 내부가 너무 복잡하고 답답해 보이는 게 문제다. 39층 규모에 이른바 닭장 아파트라는 별명을 얻었다 한다. 실내도 복잡하다. 왜냐하면 아파트 평수가 10평 이하나 10평 초반대가 많아서다. 이런 가구들이 2만여 가구가 한 빌딩에 모여 있다 생각해 보라. 생각만 해도 너무 답답하다.
원래 호텔로 지었다가 아파트로 바꿨단다. 닭장이란 별명이 붙은 이유기도 하다. 하루 묵는 호텔과 생활공간인 아파트는 달라야 하는 법인데 리모델링만으로 이 거대한 구조물을 아파트로 만들었다는 게 믿기 어렵다.
우리와 주거 개념에 대한 생각이 다른 걸까. 아니면 공간효율만 생각해 지은 걸까. 주로 임대 아파트가 많은데 임대료는 항저우 지역에서도 매우 비싼 50만원~80만원 수준이란다. 도무지 이해할 순 없지만, 그 안에 모여 사는 중국인들이 더 이해하기 어렵다.
그런저런 이유로 지금 이 아파트는 절반 정도가 입주자를 못 구해 텅 빈 상태라 한다. 과거엔 아파트 별칭처럼 온라인 인플루언서인 왕홍(网红)들이 몰려들어 살았지만 이들도 불편했는지 많이 떠나간 모양이다.
논란의 중심, 세계 최대 수력댐 싼샤(三峽)
요 며칠 전에도 세계 최대 수력발전 댐인 싼샤댐이 수문을 열어 전 세계 메스컴의 화제가 됐다.
이 댐 수문 개방이 이슈가 되는 이유는 댐이 커서가 아니다. 장마로 댐 수위가 위험수준에 도달해 연 것인데, 이미 하류 지방에서는 홍수로 물난리가 나 도시가 잠기는 가운데 수문을 열어 치수기능 자체에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실제로 댐 수문 개방으로 하류지역 난양시 같은 도시들의 물난리가 심각해졌다. 싼샤댐 상류에는 3개의 댐이 더 있지만 양쯔강의 유량과 유속을 감당하지 못한다. 어쩌면 이 댐들의 태생적인 한계이기도 하지만, 너무 큰 규모로 세운 것이 문제를 키웠다는 비판을 면치 못한다. 저수량이 엄청나다 보니 방류만 하면 물난리가 일어난다.
우선 이 댐이 들어선 양쯔강(장강) 중상류 유역은 초대형 댐을 막기에 적합하지 않은 조건이다. 드넓은 칭짱고원에서 모여 흘러나오는 강물의 유량이 엄청난 데다 경사도가 급해 유속이 엄청나게 빠르다. 댐을 막은 지점의 지형조차 조금만 올라가면 아주 깊은 협곡이라 댐 규모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좁고 깊고 긴 저수공간에 물을 가두어야 한다.
자연히 지반이 받는 압력이 커 이 댐 상류의 쓰촨성에서 자주 일어나는 지진이 이 때문이란 분석이 나온다. 또 요즘 중국의 타이완 침공이 논란이 되는 가운데 타이완 정부는 중국 도발 시 미사일로 이 싼샤댐을 공격하겠다는 독침 전술을 공공연히 말하고 있다. 너무 큰 댐이라 국가의 약점이 되어버린 형편이다.
주변 경관을 해쳐 철거된 관우상
청동으로 만든 이 관우 동상은 사이즈 자체가 문제였다. 3억 위안(약 543억원)을 투입해 1,200톤의 청동으로 후베이성 징저우(荊州)에 세워진 이 동상은 높이가 68m로 너무 거대해 주변 문화재들과 조화가 맞지 않아 오히려 경관을 해친다는 이유로 철거 명령을 받았다. 현재 철거됐다는 소식도 있다.
이 외에도 중국에서는 기단을 포함해 128m 높이를 자랑하는 세계 최대의 불상인 허난(河南)성 루산(鲁山)의 루산대불(鲁山大佛)을 비롯해 수없이 많은 불상들이 지자체들의 경쟁에 의해 키자랑을 하고 있다.
지어만 놓고 버린 24층짜리 목조 호텔
중국 구이저우성 두산(獨山)현에 건설하다 버려진 이 목조건물은 구조물 자체를 크게 만들어 문제가 생긴 게 아니라 이 건물과 함께 지어진 구조물들이 너무 많은 예산을 탕진하는 바람에 파산 지경에 이른 셈이다.
천하제일 수사루(天下第一 水司楼)라는 이 목조 호텔은 높이 99.9m의 24층 빌딩이다. 무엇보다 이 건물은 외관을 완공해 주변 관광지를 오픈했지만 찾는 이가 많지 않아 용도 폐기된 상태다. 오래 방치되다 보니 이미 건물은 흉물로 변했고, 이곳을 개발한 공무원들의 예산낭비와 부정부패로 중앙정부의 수사까지 받아 지역개발에서 큰 오명을 남긴 사례다.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폐건물
거의 다 지어진 마천루가 폐기물처럼 버려지는 경우는 아주 드물다.
이 사진의 빌딩은 중국의 경제성장이 피크에 도달했을 무렵 세워지기 시작해 몰락할 무렵 미완공 상태로 버려져 마치 중국의 운명을 상징하는 듯하다. 멀쩡한 구조물 상태로 버려진 이유는 뭘까. 다른 빌딩들도 빈 룸이 많은 중국에서 이 빌딩은 효용가치가 없기 때문이다.
중국에서 5번째로 높은 빌딩인 톈진117타워(골딘 파이낸스 117타워)이다. 이름대로 117층에 596.5미터 높이를 자랑한다. 그러나 2008년 공사가 시작되어 2015년에 멀쩡한 구조물로 목표한 높이에 도달했으나 인테리어 공사와 상층부 익스테리어 공사만 남겨둔 채 거의 10년째 그대로 방치되고 말았다. 원인은 사업자 측의 자금고갈로 알려졌다.
1987년 이래 약 40년째 흉물로 버려진 105층 평양 유경호텔도 있지만 경제주체인 사업주나 국가가 과욕을 부린 결과임에는 분명하다. 어쨌든 이 빌딩은 흉물로 남았음에도 세계 톱-10 마천루 중 9위를 기록하며 버티고 있지만 쇠락하는 중국 경제의 상징으로 남았다.
나의 중국 경험으로 볼 때 큰 걸 좋아하는 중국인들의 심리는 대국(大國)으로서의 문화적 현상, 대륙기질 등과 상관이 깊다.
그런데 궁전이나 항구 건축, 도시계획을 대규모로 하는 것과 효용성을 도외시한 대형 구조물이 가지는 의미는 전혀 다르다. 세계 최대를 지향하는 것이 오로지 목표라면 모르겠으나 이 점에 대해 중국인들이 변별력을 잃은 건 아닌가 생각해 본다. 허세를 부리는 측면도 있다. 부를 과시하기 위해 먹지 않을 음식 접시를 겹겹이 포개 상을 차리는 풍습과도 무관치 않다.
초대형 구조물을 추구하는 중국인들의 문화현상은 아마도 오랜 세월 유럽과 열강 각축전을 벌여온 탓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 시점에서 보면 중국의 ‘초대형 신드롬’이 국가적으로나 경제에 큰 부담이 되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마치 40여 년 개혁개방으로 우상향하던 중국 경제의 기세를 온몸으로 보여주던 거대한 구조물들은 지금 이를 보는 중국인들에게 한숨을 낳고 있다.
마치 청나라 이후 잃어버린 초강대국 지위를 되찾은 것처럼 끝을 모르고 치닫던 중국인들의 대국 신드롬이 무너지고 있다. 중국이 고도 성장 가도를 달려 온 것은 20여 년 정도의 짧은 기간에 불과했다. 큰소리치던 중국 외교부도, 싹쓸이하던 동대문 마마도, 중동과 아프리카, 남미까지 뻗어갔던 ‘일대일로’ 바람도 이젠 볼 수 없다. 번성했던 도시일수록 실업자들이 넘쳐나고, 빈집들이 쌓이고 있다.
초강대국은 인구와 큰 영토만으로 되는 게 아니다. 세계 최대의 구조물을 짓는다고 되는 건 더더욱 아니다. 인구와 자원은 초강대국의 바탕일 뿐이다. 그것을 이끄는 힘은 엘리트들의 집단지성으로부터 나온다. 중국은 그것에 실패한 것이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은 <논어>에서 공자가 한 말이다. 수많은 사자성어 중에 아마도 단 한 번도 예외 없이 세상 이치와 딱 들어맞은 유일한 사자성어가 과유불급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문화혁명 때 공자를 버린 중국인들에게 이 사자성어가 지금 아픈 교훈을 주고 있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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