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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중국 경제의 모순 '비야디 vs 탕핑'

by 직관직설 2024. 9.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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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은 높은 곳을 향해 달리고, 인민들은 바닥을 지향하고 있다.

 

지금 중국의 현실이 그 모순에 직면해 있다. 그 괴리 사이에서 답을 찾지 못한다면 중국의 몰락은 더 가속화할 것이다. 시진핑이 도달하고 싶어 하는 높은 곳이란 사회주의 이념과 글로벌 No.1이며, 인민들이 지향하는 바닥은 더 추락할 데가 없는 가장 안전한 바닥의 삶이다.

‘ 탕핑 ’의 유래가 된 영화  ‘ 我愛我家 ’ @  소후닷컴

 

우리는 많은 궁금증을 느낀다. 시진핑은 왜 그토록 사회주의의 이상적 국가를 향해 달려왔는가? 그것은 사회주의 이론에도 있는 것처럼 자본이 축적되면 사회적 불평등이 발생하고, 이를 해소하기 위한 궁극적 체제인 사회주의 체제를 완벽하게 구축할 때라는 믿음 때문이다. 그래서 시진핑 정부는 이른바 신질(新質) 생산력을 주 경제정책으로 내세우고 있는 것이다.

 

신질 생산력이란, 반도체, 전기차, 신소재, 우주산업, 최신 무기 등 중국이 세계 패권을 움켜쥐는 데 필요한 첨단산업의 힘을 말한다. 현재까지 나타난 결과로 보면 그 정책은 성공적이지 않다. 대표적으로 실패한 품목이 바로 전기차와 반도체다. 세계시장에서는 비야디가 이를 상징한다. 엄청난 전기차 보조금을 투입했으나 쌓여가는 재고 물량을 밀어내는 데 열중하고 있다. 이 밖에 거의 전 분야 산업들이 비슷한 상황으로 테무(Temu)와 같은 기업들이 손해 보는 수출에 매달려 미국과 유럽 경제학자들은 이를 디플레이션 수출이라 부른다.

시진핑 중국 주석
시진핑 중국 주석  @  신화넷

침묵의 저항 탕핑

그 사이 부동산이나 생활필수품 산업 등 실물경제는 하락과 침체를 거듭해 왔다. 결과적으로 중국 인민들은 정부가 승부수를 건 반도체와 전기차, 국방력과는 무관한 자신들의 삶에서 소외되고 있다. 일자리를 잃고, 줄어들거나 끊어진 수입으로 인해 나락으로 떨어진 청년들은 거리의 노숙자로 전락했다. 조금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불안한 미래를 예측하면서 돈을 쓰지 않고, 그보다 더 여유가 많은 이들 역시 지출을 억제하면서 경제 파탄을 걱정해 금을 사 모으고 있다. 소비시장의 극단적 침체가 거기에서 시작됐다.

 

탕핑(躺平). ‘평평하게 드러누워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라는 뜻의 탕핑은 중국 정부에 대한 청년들의 적극적인 항변이다. 우리 기준에서 보면 극단적인 저항에 다름 아니지만 겉으로 나타나는 모습이 퇴행적이고 무기력하다 보니 중국 정부로서는 내버려 두는 셈이다. 다만 그런 모습이 한심해 보이는 시진핑으로서는 그렇게 눕지 말고, 농촌이나 산골에라도 가서 노동을 하라라고 말한다. 그것이 바로 지금 중국 정부와 인민들 간의 괴리와 모순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단면이다.

 

탕핑은 실업자들의 항변 수단에 머물지 않고, 점점 진화하여 청년들의 생활양식으로 굳어져 가고 있다. 광둥성 젊은이들이 매일 영화관에 가서 영화는 보지 않고 이불을 깔고 누워 잠자는 모습은 언론을 통해 자주 소개됐다. 심지어 요양원에 입원하여 빈둥빈둥 노는 청년들이 늘어나는 추세이다. 이들의 청년 요양원 월 이용료는 1500위안(약 28만원) 정도다. 최소 월평균 5000위안(약 93만원)을 내야 하는 기존 양로원과 비교해서 매우 저렴한 수준이다.

 

탕핑은 또 다른 형태로 진화하여 가 되기도 한다. 무기력함의 표현이란 점에서는 유사한 저항 형태이다. 상하이의 한 대학생이 새를 흉내 낸 모습의 영상을 중국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게 세계적인 화제가 됐다. 그 큰 사이즈의 반소매 티셔츠 속에 팔을 숨긴 채 새 발톱처럼 손만 내어 난간에 올라앉은 듯한 새의 모습을 표현했다. 그는 다가오는 시험에 대해 학생들이 느끼는 스트레스를 전달하고 싶었다고 밝히면서 "새들은 자유롭고 정처 없이 하늘을 날 수 있다. 자유를 향한 욕망의 표현이라 설명했다.

중국 대학생들의 탕핑
중국 대학생들의 탕핑  @  소후닷컴

이 모순은 어디까지 갈까?

중국은 여전히 5%대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인민들의 삶과 직접적으로는 거의 무관하다. 중국 인민 모두가 잘살자는 공동부유(共同富裕)가 실패한 것이다.

중국 정부의 높은 곳과 인민들의 낮은 곳 사이의 이러한 괴리는 어디까지 따로 갈 수 있을까. 이 글의 제목이 암시하듯이 비야디와 탕핑의 모순은 어느 한쪽의 모순이 해결될 때 비로소 해소된다.

 

간단하게 말해서 중국 정부가 지향하는 반도체나 전기차가 세계시장을 정복하고, 이 힘이 바탕이 되어 중국이 다시 경제 대국의 지위에 올라야 이 모순은 해소된다. 이에 대해 중국 정부는 여전히 가능하다라는 신념을 굽히지 않고, 매년 엄청난 자금을 쏟아붓고 있지만, 이를 보는 세계 경제 전문가들의 시선은 차갑다.

 

특히 경제 전문가들은 당장 부동산이나 실물경제에 자금을 투입해야 한다는 의견들이다. 특히 부동산은 중국 인민들에게 경제생활의 모든 것을 의미한다. 우리로 치자면 ‘영끌’‘영끌’ 같은 것이다. 그러나 정부는 실물경제에 아랑곳없이 신질경제(新質經濟)’에 올-인하고 있다. 결과는 좋지 않다. 무려 2백여 개에 달하는 전기차 기업들이 거액의 지원금을 받았으나 이 중 1/2 정도가 도산했다. 반도체 역시 수백조 원을 투입했지만 유의미한 결과를 내지 못했고, 상당 금액이 관료들과 경영진들의 호주머니로 들어갔다는 것이 유력한 해석이다.

 

중국경제 회복엔 더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란 관측이 나오는 것도 그런 이유다. 이는 곧 회복 전망이 어둡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혹자는 중국이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뜨렸다라고 말하지만, 더 정확하게 정정하자면 미국(G1)을 향한 칼을 너무 일찍 뽑았다라는 말이 된다. 지도자가 국민을 향해 외친 애국주의희망의 메시지는 정치적 레토릭으로서 의미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현실에서 실현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지금 시진핑의 G1을 향한 비야디의 질주가 바로 그런 것 아닐까. 중국경제의 침체는 우리 경제에도 큰 부담이다. 중국이 이념과 현실 사이의 접점을 찾아 경제회복의 길에 들어서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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