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용(寬容)은 서구적으로는 톨레랑스(tolerance)라는 개념으로 ‘자신과 타인의 차이를 인정하고 너그럽게 받아들인다’라는 의미다.
서양에서 톨레랑스의 개념을 가장 확실하게 문화적, 제도적으로 확립한 나라는 프랑스이다. 프랑스인들은 참혹한 대립과 갈등, 인명의 희생을 통해 처절하게 톨레랑스가 필요하다는 교훈을 얻었다. 1562년 바시 학살, 특히 비슷한 시기 36년 동안이나 계속된 신·구교 간 위그노 종교전쟁 등을 거치면서 종교적 차이로부터 타협하면서 선포된 낭트(Nantes)칙령을 통해 톨레랑스가 자리 잡았다.
관용의 관점에서 아시아를 보면 놀랍다. 아시아에서 관용은 뚜렷한 기원을 알기 어려울 정도로 뿌리가 깊다. 노자의 도교나 자연주의, 불교의 세계관, 성리학의 윤리관에 이르기까지 관용은 큰 덕목이다. 일부 국가나 특정 시기에 외래 종교에 대한 탄압이 있었지만, 권력을 지키기 위한 문화적 배척 현상으로 보는 게 맞다. 동양 문화 기저에 흐르는 이념의 한 줄기가 관용임에는 분명하다.
서양의 톨레랑스는 근대 이후 정치제도와 예술, 건축 등으로 스며들었고, 아시아의 관용은 윤리와 사회문화, 예술, 그리고 원초적으로 종교 자체에서 내포된 관념이었다. 그래서 지금 아시아의 관용 상태는 어떨까를 보는 게 이 글의 주제이다.
관용은 중국에서 싹트고, 자라지 못했다
먼저 고대 문화의 용광로라 할 중국을 보자. 사실 고대 중국은 우리 민족과 유목민족, 중원과 남방 농경 민족들이 공유한 공간이었지만 여기서는 그냥 중국으로 통칭하자. 지금 중국은 관용이 가장 필요한 나라가 됐다. 혹자는 전통문화를 파괴한 문화혁명(1966~1976년) 때문이라 말하지만, 나는 중국의 관용 관념이 희박한 것은 그보다 오래전의 일이며, 관용의 땅 중국에서 관용이 흘러넘친 시절이 없었다고 본다. 민족 간 각축전이 첨예하게 전개된 까닭이었을까?
관용은 그저 타인을 이해하는 차원이 아니다. 그것이 문화가 되고 가치관이 되려면 주체적인 자기 정체성이 먼저 서야 한다.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중국의 문화적 조건이 관용에 유리한 것도 아니다. 이를테면 북위(北魏, 386년~) 때 관롱집단(關隴集團)과 같이 유목문화와 중원문화가 융합되고, 전 역사를 통해 남방과 중원, 북방의 지배력이 교차하면서 문화적 습합(習合)이 자주 일어난 것이 관용과 외부 세계에 대한 공감 능력을 키우는 데에는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는 게 나의 해석이다.
피할 수 없는 현실의 냉엄함이 가져온 결과물로서의 융합과 습합은 중국을 주체적인 문화가 우뚝 선 대국으로 키워내기에 너무 혼란스럽고 거친 압력에 불과했으며, 정제된 힘을 축적하지 못했다. 만약 나의 지론이 틀렸다면 지금의 중국인들이 관용의 힘으로 문화혁명의 트라우마 정도는 넉넉하게 극복하고도 남음이 있어야 한다. 심지어 주링허우(90년대 이후 출생자)와 같이 공자 맹자 사상에도 열린 문화를 경험하면서 풍요롭게 자란 세대에서 한국이나 일본에 대한 맹목적인 반감이 더욱 강하다는 점만 봐도 문화혁명은 중국의 몰(沒)-관용 현상과 무관함이 명백하다.
중국은 끊임없이 혼란의 역사를 거치면서 북방 유목민족으로부터 엄청난 수탈을 당하고, 또 인접국에도 엄청난 수탈을 자행했다. 거기서 중국이 잃은 것은 그나마 지켜져 온 관용이었고, 잃은 것은 관용이 사라진 자리에 채워진 탐욕이었다. 대륙기질 또는 대국주의란 이름으로 표현되는 다양한 모습들이 돈과 영토, 권력에 대한 탐욕의 변이들이 아니면 뭔가. 전혀 극단적인 평가가 아니다. 역사의 단면들과 구체적인 사례를 잘 생각해 보면 이러한 의미론적 분석이 오히려 중국에 대한 관용(?)의 일종이란 걸 이해할 것이다.
지금 중국 군중들은 이념으로부터 또는 정보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전체주의의 체제 특성 때문만이 아니다. 심지어 중국인들에게 외부 정보는 객관화하여 받아들여지기에도 부적절하다. 이미 왜곡된 인식의 틀이 경고하게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아무리 태극마크를 단 손흥민이 뛰어다닌들 “중국인의 후손이라 축구를 잘한다.”라는 생각에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이쯤 되면 관용을 논할 형편이 아니다. 인식의 렌즈를 바꿀 방법을 논하는 게 빠르다.
한국의 관용, 개를 줘 버렸다
중국을 나무랄 때는 아니다. 한국도 정도가 덜할 뿐 양상은 더 심각하다.
나는 우리 전통 예절이 타인과의 적절한 거리를 두는 문화적 습관에 그 본질이 있다는 믿어 왔다. 심지어 부부 간의 유별한 관계도 그런 것이다. 그 거리 안에 관용이라는 정신이 우리 민족의 오랜 공존문화를 창출했고, 그 공간에서 한민족이라는 결집체가 응축과 팽창을 거듭하면서 분열과 통일을 이루어 왔다는 생각이다.
이러한 공감대가 무너진 것은 언제 어떤 이유 때문일까. 워낙 동질성이 강한 문화였고, 그 분열이 오래 전 일은 아니었다. 역사의 내면을 속속들이 보면 조선 중기부터 극심했던 붕당정치(朋黨政治) 국면을 빼고는 조선시대까지 가치관 때문에 갈등한 예를 찾기 어렵다. 유교 이념이 지배하던 사회인 조선에서 불교가 성행했던 점만 봐도 문화에 대해 관대했던 점을 알 수 있다. 삼국시대나 고려시대부터 영·호남 지역 갈등이 심각했다는 주장은 그 자체가 지역의 차이와 차별, 갈등의 개념조차 변별하지 못하거나 하지 않으려는 수준이라 논외로 하겠다.
우리 민족에게 관용이 사라지고, 갈등과 탐욕이 그 자리를 채운 것은 구한말부터라고 본다. 우선 일제 강점에 의해 역사관으로부터 가치관 체계가 크게 손상된 것이 발단이었다. 국권의 상실은 곧 엘리트 사회의 파탄을 거치면서 사회적 공감대의 붕괴와 갈등을 유발했다. 그 과정을 보면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심각한 지성인들의 집단적 괴멸 현상을 목격할 수 있다. 오죽하면 지성인이라는 자들이 그 절체절명의 시대에 왜색 짙은 퇴폐주의나 아나키즘에 빠졌을까. 그들이 스스로 뛰어들어 자살한 퇴폐적 강물을 우리는 한국 현대 사상과 문학의 뿌리라고 가르치고 있다.
그리고 독립이 언제인가 하고 남북이 분열되고 한국전쟁까지 치르면서 관용이 몰락한 공간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일제 강점기 이후 단 한 번도 제대로 된 정신문화 교육체계나 학술활동에 기반한 캠페인조차 없었다. 오랜 관용의 민족이면 대수인가. 아무도 돌보지 않는 관용은 그저 개에게 준 밥이 되어 버렸다.
그래서 우리는 톡톡히 대가를 치르고 있다. 열심히 일해서 세금을 내면 열심히 싸워서 나라를 병들게 하는 정치인들과 자신들의 승진을 위해 일하는 공무원들에게 세비와 월급을 주는 노예로 전락한 것이다. 그냥 평범한 노예도 아니다. 세비를 대준 정치인들의 싸움에 끼어들어 계속 갈등을 부추기는 참 열정적으로 멍청한 노예일 따름이다. 한 해 평균 246조 원의 세금이 사회갈등에 소모되는 돈으로 쓰인단다.
일본이라면 좀 다를까
예의 바르고 아싸리한 성격을 가진 일본인들이라면 다를까 싶다.
뭘 기대하겠는가. 섬나라의 폐쇄적 특성을 가진 일본에서 관용을 기대하기란 어렵다는 말로 결론을 내려도 크게 틀리지 않는다.
구체적인 예를 들어 보자. 국내에서 큰 화제가 된 ‘네이버 라인 사태’가 일본의 몰-관용을 잘 보여주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는 왜 라인의 경영권을 접수하지 못했을까? 일본에겐 라인이 필요했고, 정부가 강하게 밀고 나오면 네이버가 아리가토(ありがとう) 하면서 엎드려 처분을 기다릴 줄 알았던 것이다. 일본 정부는 우리 정부까지 나서서 반발하지 않을 거라 예상했단다. 엄청난 반발이 현해탄을 건너가 일본 정부의 뒤통수를 때렸다. 결국 일본 정부는 한 발을 뺐다. 여기까지 이해가 가는가?
네이버가 고민을 시작하고 한국 여론이 들끓으면서 대통령실까지 나서자 일본 기업들도 많이 놀랐단다. 일본에선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니까. 그만큼 일본은 한국을 모르고, 한국에 대해 이해하려는 관심조차 없다. 폐쇄적 인식 때문이다. 이 점은 이해가 가지 않겠지만, 모두 사실이다.
아직도 일본은 반도체로 한국과 타이완을 앞설 수 있다고 믿는다. 정부 주도로 2나노급 반도체 라인을 세우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한국과 타이완을 여전히 식민지 수준으로 보는 데에서 비롯된 과욕이다. 현재 일본 반도체 전문가들의 기술 수준은 20나노 또는 그 이상 어딘가에 멈춰 있다. 전문인력이 없이 어떻게 반도체를 만들 것인가. 반도체의 원조인 미국도 자력으로는 어렵다고 포기한 첨단 반도체다, 우리로선 이해가 가지 않으나 일본은 국가 미래를 걸고 반도체에 올-인하고 있다.
그리고 일본은 여전히 수직구조의 사회를 미덕으로 여기고, 도제식 장인정신을 숭상하며, 매우 우수한 성능의 팩시밀리와 플로피디스크를 보편적으로 쓰는 나라이다. 일본 정치인이나 공무원들에게 업무적인 이메일을 보내면 같은 내용을 팩스로 보내 달라는 답변이 이메일로 온다는 경험담이 허다하다. 최근 일이다. 그만큼 디지털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는 나라가 일본이다. 그런 일본이 빅데이터를 위해 라인을 탐내고, 2나노 반도체를 만들겠다는 얘기는 대장간 장인들이 반도체를 만들겠다는 말과 다를 게 별로 없다.
일본인들은 관용이 미덕이거나 부족한 차원이 아니다. 남들에게나 주변국 또는 세상이 돌아가는 현상에 대해 무관심하다고 말하는 게 가장 맞는 편이다. 국민 중 여권을 가진 비율이 17%에 불과한 것이 일본의 실정이다. 외부에 무관심한 정도가 지나치다. 그렇지만 한국이 세계 무대에서 잘 나가거나 독도 문제처럼 자신과 이해관계에서 어긋나면 항상 무시하거나 고집을 부린다. 언론매체들조차 국수주의 경향이 강해 한국의 좋은 뉴스는 전달해 주지 않는다.
일본에게 당장 필요한 것은 관용이 아니라 관심이다.
관용의 반대말은 ‘죽음’?
관용은 있어서 좋은 게 아니라 공존의 필수조건이다. 그래서 몰-관용에 대해 나는 의도적으로 강한 어법을 썼다. 조금 심한 질책을 듣는 게 무슨 대수인가. 관용이 없는 현실 자체가 처참한 것을.
톨레랑스가 자리 잡기 전 프랑스에서 관용의 반대말은 무엇이었던가. ‘죽음’이었다. 수없이 많은 목숨을 잃고 관용을 찾은 게 프랑스다. 이 점을 기억하자. 지금 사상 최악 수준인 몰-관용의 아시아에서 빠른 시기에 대량의 죽음이 동반되는 전쟁이 일어나지 말란 법이 없다.
관용의 결핍이 아시아만의 문제는 아니다. 이번 파리올림픽에서 유럽 관용의 원조인 프랑스가 보여준 모습은 톨레랑스와는 아예 거리가 먼 천박함 그 자체였다. 다만 서구사회에서의 톨레랑스는 프라이버시, 그리고 민주주의라는 체제 안에서 엄격하게 확보된 자생공간을 가졌다는 점에서 최소한의 안전장치는 갖추고 있다. 다만 이슬람 이민자들과의 갈등이 테러를 일으키면서 극우파 정부들이 속속 들어선 유럽의 민주주의가 제 모습으로 지켜질지 걱정하는 시각이 많다.
이제 아시아는 유구한 문화가 준 선물인 관용을 버리고 어디로 갈 것인가. 남한과 북한, 한국과 일본, 일본과 중국, 중국과 타이완 등 한 치의 양보와 이해도 없이 미사일을 날리고, 독설을 퍼붓고, 증오하면서 계속 이렇게 갈 것인가.
이긴 자와 권력자들이 쓴 덧칠된 역사를 배우며 자란 우리는 그토록 많았던 전쟁마저도 피비린내가 지워진 영웅담과 연대기로 남은 과거를 로맨스나 뼈아픈 교훈 정도로 배웠다. 그러나 언론사를 포함해 개개인이 모두 사가(史家)나 다름없는 이 첨예한 미디어 환경에 살아가는 우리에 대해 후손들은 어떻게 기억할까.
미래에 언젠가 어떤 이유로 갈등과 전쟁의 시대가 끝난다면 이 시대 우리에겐 정말 최악의 치욕스러운 평가가 내려질 것이다. 그 상세한 실시간 기록들을 들춰본 후대의 그들은 우리에 대해 큰 논란 없이 이렇게 결론 내릴 것이다.
“충분히 소통하고 교류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추어졌음에도 체제와 이권, 이념 때문에 터무니없는 일로 우기고 싸우며 수백 년을 낭비한 아주 멍청한 선조들이 있었다. 관용을 아예 모르는 시대였다. 특히 지성인들이 스스로 집단지성을 버리고, 그 갈등을 부추기는 주도 세력이었다.”
지금 관용은 산소만큼 중요할 수도 있다.
만약 그대가 아시아 어느 나라 시민으로 살아가는 이 시대 지성인이라면 후일 그런 치욕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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