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일들에 대해 어떤 식으로든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설령 그것이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라 할지라도.
적국에 오물을 뿌린 난해한 정책 결정?
지금 우리 앞에 놓인 이해 불가 난제는 바로 ‘북한발 오물 풍선’ 사건입니다.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상식에 근거하자면 한 국가체제가 아무리 미운 적국이라지만 오물을 담아 풍선에 실어 날려 보내는 일을 상상하기가 어렵습니다. 이 사건을 이해하자면 대단한 인내심과 역지사지, 그것으로도 모자란다면 극한의 똘레랑스가 필요합니다.
우선 북한 국무위원회 김정은 위원장의 동생 김여정의 입장을 들어보죠. 조선중앙통신 담화를 통해 김여정은 "우리의 사상과 제도를 헐뜯는 정치 선동 오물인 삐라장과 시궁창에서 돋아난 저들의 잡사상을 우리에게 유포하려 했다"며 "우리 인민을 심히 우롱 모독한 한국 것들은 당할 만큼 당해야 한다. ‘표현의 자유 보장’을 부르짖는 자유민주주의 귀신들에게 보내는 진정 어린 성의의 선물"이라 말했죠.
정리하자면 탈북자단체의 대북 풍선 보내기 운동에 대한 보복이며, 그 내용물이 오물에 가까운 내용이라 우리는 진짜 오물을 보내니 이것도 표현의 자유라는 겁니다. 김여정의 심정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진짜 오물 맛을 보여주마!” 이겁니다. 이제 논리적으로는 이해했습니다.
"우린 뭐든 할 수 있어. 건드리지 마!"
그럼, 정치적으로 이해할 차례입니다.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차라리 테러나 국지전 같았으면 피해는 컸겠지만 ‘오물’처럼 더러운 느낌은 아니었을 겁니다. 설령 이번 일로 북한이 테러보다 더 큰 심리적 효과를 봤을지언정 이런 짓을 한 국가의 추락한 이미지에야 비하겠습니까? 손익계산이 안 나오는 사건임을 북한 수뇌부가 모르진 않았겠죠.
다른 차원에서 이해하도록 관점을 바꿔 보겠습니다. 이런 가정을 해 보겠습니다. 만약 우리나라 또는 북한 아닌 어떤 나라에서 오물 풍선과 같은 정책을 결정하려면 과연 실행에 옮길 수 있을까 하는 가정입니다. 저는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북한이기에 가능하다는 거죠. 전체주의 1인 독재체제에서만 가능한 결정이 분명합니다.
북한이 보여주고자 하는 진정한 의도, 핵심 메시지는 “우리는 뭐든 한다!” 바로 이것이죠. 이렇게 이해하고 넘어가면 될까요? 이러한 정책 결정 프로세스 뒤편에 숨겨진 사회주의 체제의 본질과 모순에 대해 알아야만 우리가 그들과 맞서 겪게 되는 여러 가지 불쾌한 경험들을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참새 섬멸하고 4천만 굶겨 죽인 마오쩌둥
자, 이제 화제를 바꿔 보겠습니다. 이 오물 풍선 사건과 다르면서도 같은 사건이 있었습니다. 잘 알려진 대로 중국 마오쩌둥(毛澤東) 주석이 벌인 ‘참새 섬멸 작전’입니다.
때는 1958년 무렵, 대약진운동에 나선 마오(毛) 주석이 쓰촨성 한 농촌을 방문했습니다. 논에서 벼 이삭을 쪼아 먹고 있던 참새를 발견한 마오 주석은 “내, 저 놈의 참새를 다 때려잡고야 말겠다”라는 결심을 하죠. 인민들의 식량난을 해결해 보려는 지도자의 결단이었죠.
이른바 타마작운동(打麻雀運動), 참새를 때려잡자는 운동이죠. 다 아시다시피 수억 명이 나서서 보이는 대로 참새를 때려잡은 결과 살판 난 건 벼멸구 같은 해충들이었는데 이들이 창궐했고, 수년간 흉년이 들어 대약진운동을 거치면서 굶어 죽은 중국인들이 3천만 명, 많게는 5천만 명으로 추산됩니다.
이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마오 주석은 당시 미국과 함께 세계를 주름잡던 영국의 철강 생산량을 앞지르기 위해 전국의 모든 쇠붙이를 녹여 필요한 도구들을 만들었답니다. 자연히 농촌에서는 호미나 괭이, 삽 같은 쇠붙이로 된 모든 농기구들까지 녹여졌으니 당장 농사가 안 되는 철강 생산실적이 나라 경제에 무슨 도움이 되었을지요?
집단지성이 실종된 전체주의 체제
벼 이삭을 쪼는 참새나 천적이 사라져 창궐한 벼멸구가 문제였을까요? 이것은 한 지도자의 즉흥적인 감정이 빚어낸 모순, 그 문제일 뿐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치부하기엔 희생과 손실이 너무 큰 것이 문제입니다.
집단지성이 없는 사회, 전체주의 체제의 모순은 여기서 생깁니다. 북한에 국가 이미지를 걱정하는 그 분야 전문가가 왜 없을까요? 참새를 다 죽이면 농사를 망칠 수 있다는 걸 아는 생태학자가 중국에 왜 없을까요?
독재자 앞에서 용기 있게 말하는 사람이 없어서라고요? 아닙니다. 아무리 독재체제라도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오물 풍선과 참새 사냥, 이 두 사건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나쁜 결과가 올 거란 점은 분명히 알겠지만 그 이유를 논리적으로 설명하기에 복잡하다는 겁니다.
이럴 경우 현명한 2인자 또는 3인자, 아니 테크노크라시(전문 관료)들이라면 어떻게 처신해야 할까요. “참새를 섬멸하는 구역과 아닌 구역을 통제하여 실험해 보자”, 또는 “오물 말고 다른 내용물도 검토해서 가장 효과적인 방안을 찾아보자” 이런 대안을 제시해야겠죠.
집단지성 체제라면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북한과 중국은 지금까지도 김정은이나 시진핑에게 반론이나 대안을 제시할 스태프들을 가지지 못한 까닭입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런 스태프들은 중급 간부가 되기 전에 모두 숙청된 것일지도 모르죠.
충분히 현명하지도 박식하지도 못한 지도자, 용기 없는 부패한 관료체제, 그래서 그들과 마주한 우리는 계속해서 죽은 참새와 오물을 더 봐야 할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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